[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김길태와 암흑대왕'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조우진, 신소율, 김기방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진실 혹은 거짓
때는 2001년. 부산지방법원이야. 판사석에 앉은 박성철 판사는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 꽤 까다로운 사건을 맡았거든.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사건이야. 그래서 정황증거와 양측의 진술만을 가지고 사건을 판단해야 해.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지, 잘 들어봐.
먼저 검사 측, 32세 여성 한 씨의 주장이야. 2001년 5월 30일 새벽 4시 50분 경, 한 씨는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어. 인적 없는 골목길을 서둘러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한 씨를 낚아채. "소리치면 죽는다"며 옆구리에 들어온 흉기를 본 한 씨는 그대로 얼어 붙었어. 이후 그녀는 인근 건물에 감금된 채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 무려 9일 동안이나.
김 씨가 어찌나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는지,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피해자 한 씨를 증인으로 불러 심문했어. 그러자 한 씨는 이렇게 진술해.
"손발을 다 묶고 소리치면 죽는다고 칼로 위협했어요! 그래서 꼼짝없이 잡혀 있다가, 겨우 탈출한 거라고요!"
한 씨와 김 씨. 둘 중 한 사람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어. 재판부를 농락한 거짓말쟁이, 누구였을까?
바로 피고인 김 씨였어. 당시 김 씨의 옥탑방은 출입구가 분리돼 있어서 부모님 몰래 출입하는 게 가능했다고 해. 그렇게 한 씨를 데려온 후 방문을 걸어 잠근 채 9일 동안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거야.
"경찰입니다! 뒷마당에 있는 물탱크, 이 댁 거 맞죠?"
▲ 용의자 김길태
▲ 애끓는 부모 마음
그런데 얼마 후, 경찰서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와. 도주 중인 김길태가 직접 경찰서로 전화를 건 거야.
"사람 안 죽였습니다! 죽었다는 애가 누군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어요!"
김길태가 겨우 열세 살 아이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거야.
당시 서른네 살이었던 김길태는 10년 넘게 교도소 생활을 해왔어. 성인이 된 이후 사회에 나와 있던 시간을 다 합쳐도 1년 2개월밖에 되지 않아. 지금까지 그가 모든 범행을 저지른 곳도, 다 이 동네야. 그리고 이 동네에 빈집이 많다고 했지? 경찰은 동네 지리를 잘 아는 김길태가 재개발지역 빈집 어딘가에 숨어있을 거라고 판단했어.
야간수색이 한창이던 어느 밤, 한 경찰이 사건현장 인근 빈집에서 수상한 형체를 발견해. 서둘러 손전등 불빛을 비추자, 누워있던 누군가가 잽싸게 일어나.
"김길태다!"
장 순경은 뒤편 건물 옥상에 있는 동료에게 급하게 신호를 보냈어. 싸인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살금살금 김길태가 숨은 옥상 건물로 다가가.
"하상욱 순경하고 같이 길태가 숨어있는 그 옥상으로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그니까 이제 잡았다, 우리는 하상욱 순경하고 '독 안에 든 쥐다'하고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길태가 갑자기 일어서서 다다다닥 뛰어서 뛰어내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죠. 거기서."
-장예태, 당시 부산경찰청 순경
강 경사는 옥상에서의 상황은 전혀 몰랐어. 그냥 인근 주차장을 수색하던 중이었는데, 김길태의 눈을 보는 순간 단번에 알아봤어.
강 경사는 곧바로 김길태가 도망친 골목으로 향했어. 잠시 후 골목 반대편에선 동료 경찰이 달려와. 김길태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야. 그런데 그 순간, 퍽! 퍽! 동료 경찰이 김길태의 주먹에 얼굴을 맞았어. 설상가상 뒤따라오던 다른 경찰과 부딪치면서 뒤엉켜 쓰러져. 결국 강희정 경사 혼자서 김길태를 쫓았어. 근데 김길태, 빨라도 너무 빨라.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져.
사실 강 경사, 유도에 태권도까지 마스터한 특수부대 출신이야. 강 경사는 분을 못 이겨 씩씩대는 김길태의 목을 조르며 이렇게 말했어.
"가만히 있어라. 목 부러진다!"
▲ 기억이 나지 않아요
민아의 얼굴을 본 적도 없다던 김길태가 이번엔 술을 많이 마셨다며 기억상실을 주장하는 거야. 경찰은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판단해. 그리고 그 거짓말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자신했어. 확실한 '증거'가 있었으니까. 바로 민아의 시신에서 나온 김길태의 DNA. 그런데…
"DNA요? 그게 뭡니까? 전 모릅니다."
김길태가 결과지를 받자마자 바로 던져버려. 사실 이 DNA로 입증할 수 있는 건, 김길태의 성폭행 혐의뿐이야. 시신이 발견된 물탱크를 정밀 감식하고 김길태의 옥탑방도 샅샅이 수색했지만, 살인과 시신유기에 대한 직접 증거는 찾지 못했어. 그래서 DNA결과로 그를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려 했던 건데, 김길태에겐 전혀 통하질 않아. DNA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지, 얼마나 결정적인 증거능력을 갖는지, 김길태가 이해하질 못 하는 거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집요한 심리전
김길태의 친구, 박 씨를 직접 만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아주 결정적인 키를 획득해. 그리고 며칠 후, 김길태와 첫 대면이 있는 날이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조사실에 앉은 김길태에게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이 한 마디를 건넸어.
"상태야."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튼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곧바로 김길태의 친구 박 씨를 조사실로 불렀어.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사전에 박 씨에게 이렇게 당부했어.
"다른 말씀 마시고 '친구야' 이 한 마디만 하십쇼."
조사관은 김길태에게 사건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곳을 아느냐 물었어. 김길태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의 뇌파 그래프가 격렬하게 반응해. 난생처음 자신의 거짓말을 목격한 김길태. 눈동자가 흔들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었어.
▲ 김길태가 직접 말한 그 날
김길태는 사건 당일 동네 뒷산에서 술을 마셨다고 해. 그리고 깨어보니 한 폐가였는데 옆에 웬 시신이 있더라는 거야. 김길태는 폐가에 있던 가방에 시신을 넣은 뒤 이웃집 물탱크에 유기했다고 진술해. 그리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본인이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시멘트를 젓고 있었대.
"시체를 보니까 불쌍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벽돌이랑 타일로 덮어줬습니다."
▲ 김길태와 암흑대왕
검찰은 김길태를 강간살인혐의로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어. 그럼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을까?
"주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이 소식이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김길태에게 사형을 내려야 한다는 탄원서가 법원에 빗발쳤어. 왜 그랬을까?
8살 여자아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하고 영구 장애까지 남긴 조두순 사건. 당시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결국 조두순은 12년형을 확정했어. 재판부가 조두순에게 감형을 내린 거야. 사유는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그런데 1년 만에, 김길태 재판에서 다시 심신미약 감경 가능성이 제기된 거야.
기본적으로 뇌전증은 뇌파검사를 통해 확진한다고 해. 보통은 24시간 연속 촬영을 하는데, 당시 감정에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48시간 동안 뇌파를 측정했어. 그럼 결과는 어땠을까? 검사 결과, 뇌전증을 확진할 만한 별다른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어. 그럼 망상장애에 대한 판단은 어땠을까?
"기본적인 현실감은 좀 있는 걸로 그렇게 나오고. 약간 일부 이제 비현실적인 그런 망상적인 생각. 이런 것들이 좀 있는 걸로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진단도 망상장애로 진단하기는 어렵고, 그런 피해망상이 좀 증상이 있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가 주 진단이다. 그렇게 저희가 진단을 한 거죠."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만 확인이 됐을 뿐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야. 범행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도 거짓말일 확률이 크다고 판단했어.
▲ 최종 판결, 그리고 심신미약
2심 재판부의 최종 판단은 뭐였을까?
"피고인이 범행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그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피고인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법률상 심신미약의 상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상인과 같은 온전한 정신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으로 보아 원심이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그 형의 양정이 너무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주문,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럼 김길태는 이 판결을 받아들였을까? 아니, 심신미약을 확실히 인정해 달라며 또다시 항소해. 하지만 2011년 4월 28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김길태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어. 김길태는 지금도 사회와 격리된 채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우리나라는 범죄자가 심신 장애일 경우 형을 면제해 주거나 감형하고 있지. 경우에 따라 교도소 대신 치료감호 시설에서 형기를 채우게 해. 반면 영국은, 정신보건법 45조 A항에 따라 법원이 치료와 형벌을 동시에 명령한다고 해. 일단 병원에 구금해 치료를 한 다음, 감옥으로 보내 형을 살게 하는 거야.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사회에서 격리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셈이지. 이런 방법이라면, 심신미약을 악용하려는 거짓말도, 정신질환 범죄자의 재범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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